With 코로나, With 예술: 치유가 필요한 시대, 예술로 마음의 안부 묻기

With 코로나, With 예술치유가 필요한 시대, 예술로 마음의 안부 묻기

김태은(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 교수)

매일 아침 뉴스마다 ‘위드 코로나’라는 이야기가 들리는 요즈음,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예술이 주는 의미와 감염병 상황 속에서 예술이 가지는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1월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어떠한 삶의 변화를 겪고 있는가.
2020년 초, 마스크를 사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들고 약국 앞에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는 시민, 글을 읽지 못하는 시민은 항상 모든 정보를 뒤늦게 얻을 수밖에 없었다. 정보화 사회 속 뉴노멀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바이러스에도 취약했다. 이처럼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감염병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여실히 드러냈다.
국민의 알권리와 방역을 위한 확진자의 동선 체크에 관한 정보는 빠르게 전해졌고, 휴대폰을 통해서는 재난 문자가 전달되었다. 쏟아지는 많은 정보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새도 없이 우리를 불안하고 긴장하게 하였으며 질병에 대한 공포감을 높였다. 또 질병을 향한 공포감은 확진자를 향한 낙인으로 연결되었다. 확진자는 지역명 뒤에 숫자를 붙여 호명되었고 그들이 지나간 장소는 ‘부정적인 장소’처럼 인식되기도 하였다. 질병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약한 마음은 그 질병에 걸린 인간을 멀리하고 자신과 그들을 분리하려고 했다. 질병 퇴치를 위한 행정적 노력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연대감을 해치고 있었다.

적응과 안정감 안에서 피어나는 창의적 움직임
집에 넉넉하게 비치된 마스크와 TV에서 헌신하는 의료진의 모습, 성공적인 K 방역에 대한 뉴스들로 우리의 마음은 점차 안정되어 갔다. 학교에서는 zoom을 활용한 실시간 비대면 수업에, 기업들은 재택근무 환경에 적응해나갔다. 코로나 장기화로 피로감과 무력감도 있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이 사라지고 있을 때쯤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필자는 그것을 창의적 움직임이라고 보았다.
미술치료를 위해 남편과 사별 후 홀로 지내는 69세 초록(가명)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코로나 이후 심각한 무력감으로 식사를 챙기지 못해 급격한 체중 감소로 복지관에서 심리사회 경제적 돌봄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의 마스크는 요일마다 알록달록 색이 변하였다. 마스크에 줄을 달아서 어떤 날은 색실로 또 다음날은 구슬로 자신만의 개성을 마스크와 마스크 줄에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미술치료의 수동적 참여자였던 분이 이제는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스크에 스스로 수를 놓는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시도를 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할머니는 활동의 결과물에 매우 만족해하며 성취감을 느끼셨다.

초록 할머니가 만든 마스크 (사진: 필자 제공)

예술로 마음건강 지키기
출근길에 마스크 쓰기, 수시로 손소독하기, 입실 시 체온 체크 등 이 시대를 살기 위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많은 일에 적응해왔다. 어느새 익숙해진 일들이 사실은 매우 큰 도전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겪은 팬데믹 상황은 개인의 성향, 환경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개인은 극심한 스트레스 혹은 불안이나 우울을 호소할 수 있다. 인류가 위기를 겪을 때 인간의 약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예술은 안전하게 담아내 주는 역할을 했다. 예술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조기개입 즉 예방차원의 치유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위기상황에서 예술의 조기개입은 회복률을 높이고 질병을 예방하고 또 치료받아야 하는 고위험군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더불어 이렇게 예방차원으로 예술치유가 개입된다면 진단 이후에 치료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예방차원의 예술치유가 중요한 부분은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 위기에서 사람들을 연결하고 통합시키는 예술의 힘이 인류 사회의 회복탄력성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유네스코 사무총장 오드레 아줄레의 설명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이야기이다.

온전(溫傳)-Art On Mind 키트: 명상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고, 천연나무조각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나만의 나무를 만들고 이후 자신의 나무를 살피며 마음을 돌보고 위로하는 키트이다. (사진출처: 찾아가는 예술처방전 홈페이지)

필자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사업 중 하나인 <2021 찾아가는 예술처방전>에서 키트를 기획하고 온라인으로 미술치유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전라, 경상 지역의 정신건강보건센터에서 조현병이나 우울증 진단을 받은 환자분과 코로나 대응 인력의 보건소 직원분들을 만나게 된다. 정신증 진단을 받은 환자와 간호사 모두가 필자에게는 미술치유의 참여자가 되는 것이다. 미술표현의 차이가 있을까? 참여도가 차이가 있을까? 만족도에 차이가 있을까? 이러한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맛보았다. 필자가 이번 사업에서 미술치유사로 참여하며 감동한 부분은 바로 진단명, 학력, 연령, 지역과 상관없이 예술을 통해 만족하는 참여자들의 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많은 이름을 붙이며 우열을 나누고 순위를 매기는 그 가치를 넘어선다는 것을 깊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예술은 어떠한 가치도 관통하는 인류 공통의 언어이자 즐거움이다.

우리는 코로나라는 팬데믹 시대를 겪고 이제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삶의 여정 가운데 또다시 어떠한 일을 겪게 될지 모르지만, 예술이라는 친구와 동행하며 예술로 마음의 안부를 묻고 예술로 위로받으며 예술로 슬픔을 애도하며 예술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태은(金兌恩, Kim, Taeeun)

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 교수. 서울여자대학교 특수치료전문대학원 박사학위 취득(2009). 정신건강의학과, 암병원, 호스피스 그리고 교육복지영역까지 미술의 치유적 경험과 의미에 대해 연구한다.




치유로서의 연극: 연극놀이 프로그램 〈마음조각〉

치유로서의 연극연극놀이 프로그램 <마음조각>

조원석(마음조각 프로그램 작가)

코로나19는 일상에 변화를 가져왔고, 그 변화 중 대표적인 것은 비대면, 비접촉이다. 사회는 신속하게 ‘비대면의 생태’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온라인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소통하고, 업무를 보고, 교육을 받았다. 코로나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변한 새로운 일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우울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그 원인을 ‘비대면 생태’라는 새로운 일상 속에서 찾았다. 하지만 모두가 ‘비대면 생태’에 대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 교육과 업무의 효율성을 얘기하고, ‘비대면 생태’의 새로운 가능성에 기대를 품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코로나 이전에도 ‘비대면 생태’의 영역이 늘어나고 있었으며,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화로 인해 이미 우리의 일상은 디지털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스트레스와 우울은 ‘비대면 생태’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각종 스트레스의 원인은 ‘비대면 생태’가 온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코로나는 닥친 일이고, ‘비대면 생태’도 닥친 일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자발적인 일이 코로나 이후에는 강제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의 놀이가 놀이인 이유는 스스로 원해서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지시로 하는 거라면 그것을 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즐거울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생태’는 자율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온라인’이 아무리 편리하더라도 스위치를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다면 그것은 곧 고통이 된다. 코로나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빼앗았고, ‘자유 의지’의 주체인 ‘나’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기 전에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군대 훈련소 마지막 날, 수료식에서 열병(閱兵)을 하는 중이었다. 친인척과 가족들이 와서 참관을 하고 있었는데, 짧게 깎은 머리와 똑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 속에서 나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쉽게 나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만 한눈에 나를 찾아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고 한다.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나를 찾아서 친인척 모두 놀랐다고 했다. 누구나 한 번쯤 있을 법한 일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뒷모습만으로도 자신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반면에 누군가에게는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마주 앉아 가는 사람들처럼) 아무도 아닌 사람이라서, 자신의 죽음으로도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나’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가슴 저미는 아픔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망통계 속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나’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있어서, 고정된 의미를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미와 가치가 형성되며, 이것은 ‘관계’에 따라 언제나 변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아무도 아닌 사람’이면서 ‘너무 특별한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도 ‘타자와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동료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이고, 누군가에게는 연인이다. 친구가 첫 만남부터 친구가 아니었듯이, ‘관계’란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그 ‘관계’에 의해서 의미가 부여되는 ‘나’ 역시 끊임없이 변한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나’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삶이라면, 코로나는 이런 삶에 큰 균열을 가져왔다. ‘타자와의 관계’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었고, ‘거리두기’는 ‘관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관계’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드러냈던 ‘나’ 역시 희미해졌다. 코로나 시대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손상 입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 내린 진단은 ‘자율’과 ‘관계’의 손상이다.

걱정 많은 철학자와의 만남-걱정을 날리는 비법 퍼포먼스
2018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차오름 프로그램 <너의 마음이 보여>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연극놀이 프로그램 <마음조각>은 코로나 이전인 ‘2018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차오름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부평문화사랑방에서 ‘너의 마음이 보여’라는 이름으로 진행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 2021년 6월 강동아트센터로 시작해서, 현재는 부평구문화재단 어린이 연극학교에서 ‘마음조각’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극놀이는 코로나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라고 해서 새롭게 조명할 필요에 대한 의문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놀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예술은 코로나로 인해 가장 먼저 멈춰버린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에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먹고 사는 일로 힘겨운 삶에서 예술은 사치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코로나 시대에 손상 입은 ‘자율’과 ‘관계’를 복원하고, 치유하는 데 있어서 연극놀이는 꽤 좋은 처방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코로나 시대의 약자인 어린이에게는 말이다. ‘연극놀이’에서 ‘연극’은 ‘관계’를 통해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놀이’는 ‘자율’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다.

2021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 <알록달록 마음 조각>
(사진: 강동구청-좌, 이현수-우)

<마음조각>은 차시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읽어내는 활동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감정을 많이 표현하는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소극적인 아이도, 타인의 감정을 읽을 때는 서툰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든 의문이 ‘언어를 배울 때 먼저 듣기가 필요하듯, 감정표현도 먼저 감정읽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였다. 차시마다 상실, 걱정, 기억, 관심을 상대방에게서 읽어내고, 그것을 키워드로 아이들은 자기 마음속에서 비슷한 감정을 찾고 공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연극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감정’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혼자 슬프고 혼자 기쁘고 혼자 화나는 일은 없다. 항상 대상이 있으며, 그것이 ‘관계’이다. ‘관계 맺기’는 ‘마음조각’을 찾아 함께 떠나는 탐험대, 또는 수사대(아이들이 직접 이름을 짓는다)가 되는 과정에도 일어나며, 이러한 과정은 ‘놀이’의 성격을 띤 ‘자율’로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타자’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러한 배움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무의식의 영역이라는 것은 ‘배움’이라는 의식 없이 ‘배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배움’은 예술교육의 특징이다.

아이들의 작업-걱정을 날리는 방법(좌), 기억조각(우)
2021 하반기 어린이연극학교 <마음조각> (사진: 부평구문화재단)

코로나 이전에도 예술은 있었고, 코로나 이후에도 예술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예술은 코로나와 상관없는 것일 수 있다. 예술은 코로나를 적으로 삼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예술은 코로나조차 삶의 일부로 품을지 모른다. 코로나와 인류의 ‘관계’ 역시 예술은 ‘승화’라는 무기로 긍정의 방식을 제공할 수 있다.

조원석(趙原奭, Jo Wonseok)

인하대학교 철학과 졸업(1998). 인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차오름 프로그램 <너의 마음이 보여> 작가(부평구문화재단, 2018). 서울시 연희 창작 역량 강화 프로그램 <현대철학으로 동시대 예술 들여다보기> 강의(서울문화재단, 2020). 인천형 학교문화예술교육 <운동장 거리두기 프로그램 ‘리본’> 작가·기획(2020~2021). 현대탈춤 <노페이스> 작가/연출. 천하제일탈공작소(서울남산국악당, 2021).




감각을 깨우는 숨, 호흡의 사운드

감각을 깨우는 숨, 호흡의 사운드

오현규(사운드 아티스트)

연예인이나 영향력이 큰 공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사회의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방관자로 있었다.

어느 날, 월 스미스 주연의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 영화 후반부에 유명한 뮤지션인 밥 말리의 일화가 소개된다. 밥 말리는 세상에 만연한 인종차별과 증오가 음악과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평화 시위 공연을 앞두고 살해 위협에도 공연을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악은 하루도 쉬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쉴 수 있겠나.”

그 장면을 보았을 때 같은 뮤지션으로 음악으로 세상을 치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내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필자는 공연과 CF음악, 연극‧드라마음악 작곡, 패션쇼 음악감독으로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며 활동하고 있었다. 주로 편한 스타일의 잔잔한 곡이나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들어가는 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있었지만, 그 뒤로부터 치유 음악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 우울증과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증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명상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를 얻고 있고, 명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효과는 미미하다는 사실을 연구기관들이 발표했다. 그래서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음악과 호흡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올바른 호흡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영국 런던의 국립 오페라 극단에서 진행한 ‘성악가의 복식 호흡 교육 프로그램’은 코로나로 인해 우울감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음악과 함께 호흡 교육을 진행하며, 우울감 감소에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호흡’은 우리의 몸을 살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동력원 중 하나이다. 현대인들의 10명 중 9명은 제대로 된 호흡법을 사용하지 않아 몸이 많이 망가지고 그에 따라 정신적 불안상태에 시달리게 됨을 연구 결과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전인치유(Total Care) 전문의 김정희 박사는 40년간 치과 전문 의학박사로 입안의 구조를 연구하다 호흡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올바른 호흡법과 혀의 위치 교정으로 몸 전신의 균형이 잡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에 필자는 이러한 올바른 호흡법을 음악(사운드)과 함께 접목하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심장박동 빠르기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템포(BPM)이다. 오늘날 스마트와치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신의 건강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각 개인의 심장박동 템포를 분석하여 인공지능 치료음악을 개발 중이다. 개인의 건강정보와 올바른 호흡법을 접목하여 명상 어플보다 효과가 높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THE REVELATION: 빈 상가 POP-UP전시, 밖으로 나간 ART>, 2021.6.-9.
(음원감상: https://soundcloud.com/hyeongyu-oh-741352087/wt6w0mwuueda)
(사진출처: 젠아트 갤러리 인스타그램)

코로나로 문화생활이 어려운 지역주민들을 위해 송도의 빈 상가에서 진행된 전시 <THE REVELATION: 빈 상가 POP-UP전시, 밖으로 나간 ART>에서 치료음악과 시각예술가의 콜라보 작업을 진행하였다. 분명한 멜로디가 있는 음악은 아니지만, 전시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내면을 치유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와 화이트 노이즈를 사용하여 작곡하였다. 특히, 뇌파가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는 432Hz 주파수와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 고주파수 노이즈를 넣어서 작곡하였다. 시각적 효과와 치료음악이 함께하는 복합적 경험이 코로나로 힘든 시민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을 위해 치료음악으로 지역 내의 다양한 공간에서 미니 콘서트 진행과 타 예술분야와의 콜라보 등을 통해 시민들이 눈(시각)과 귀(청각)로 감각할 수 있는 체험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무의식 감정 전이는 대단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

오현규(吳炫奎, Hyeongyu Oh)

동시대에 쉼 없이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쉼’이 되어 주고, 내적으로 ‘힐링’이 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료하고픈 작곡가이다. 주요 작품은 <Hope>, <크리스마스의 꿈>이 있다.




팬데믹 시대, 예술가들의 안전감 획득을 위한 심리상담 서비스 확대의 필요성

팬더믹 시대, 예술가들의 안전감 획득을 위한
심리상담 서비스 확대의 필요성

문은주 상담사

팬데믹 시대의 예술가
팬데믹 시대의 예술가들을 만나다 보면 1970년대 시행된 유명한 심리실험이 떠오르곤 합니다. ‘아이와 잘 놀아주다가 갑자기 엄마가 텅 빈 얼굴(blank face), 정지된 얼굴(still face)이 되었을 때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실험인데요.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시도하지만 끝내 엄마의 얼굴에 변화가 없자 고통으로 위축, 우울해졌다고 합니다. 관계를 통한 의미 공유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실험이기도 한데요. 상호작용을 하던 대상이 갑자기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뿐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매우 당황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좌절된다면 매우 큰 고통을 마주해야 하겠죠.

기질적으로 민감한 예술가들이 팬데믹이란 상황을 만나게 되면서 심리적 어려움이 심화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인데요. 왜냐하면, 예술창작물과 대중의 소통으로 예술이 완성된다고 한다면 이러한 만남의 제한이 곧 예술의 완성을 제한하는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콘서트를 포함한 전체 공연 시장의 피해액은 2천457억 원으로 추정(KOPIS집계, 2020.08.17.)되고 공연장 및 극장 업종에서의 전체 지출액은 전년 대비 -49.6%의 감소폭(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0.06.29.)을 보였다고 하니 예술가들의 일상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체감하게 됩니다.

상담에서 만난 예술가들은 대중들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부 예술가들을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고 있었고, 경제적인 열악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심리적 고통을 예술 창조의 근원으로 생각하면서 약물치료를 고려하지 못한 채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감당하고, 환경적 한계를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부족으로 이해하려는 점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개인 작업을 하는 예술인의 경우 혼자 고립되거나 관계의 미숙함에서 오는 문제, 공동작업을 하는 예술인들은 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갈등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어느 정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공을 지속해서 유지하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안전감 획득의 중요성
미국에서 이루어진 연구결과들을 보면 예술가들은 일반인보다 50% 이상의 높은 비율로 항우울제를, 19% 이상 항불안제 복용을 그리고 니코틴 의존의 위험성이 높았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미국의 연구와 다르지 않게 한국의 예술가들도 일반인보다 6배나 높은 매우 심각한 우울을 경험하고 있으며 예술가의 스트레스는 일반인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고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식의 활용도 일반인에 비해 낮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예술가들의 심리적 건강을 돕기 위해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자율신경계 체계(Polyvagal Theory) 연구에서는 개인이 관계에서 편안하고 즐거움을 맺는 데 필요한 요소로 안전감(safety)을 이야기합니다. 이 안전감은 스트레스와 개인의 적응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성장과 건강과 회복을 돕는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어찌 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해보지만 많은 경우 간과되기 쉬운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안전감은 예술가들에게 매우 필요한 요소가 되는데요.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작품완성을 통해 대중과 만날 때까지 여러 가지 만남을 겪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자신의 동기와 만나고, 작품의 도구와 숙련감 있게 만나야 하며 이러한 작품을 대중들과 만나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관계 맺어야 하는 여러 단계의 만남을 말합니다. 즉 ‘나와의 관계’, ‘너와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라는 다중의 과정을 거쳐야 대중들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만남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스 상황을 겪게 되고 이 상황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비난하고 정서적으로 압도되어 고립된다면 다양한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통한 안전감 획득
상담에 참여하신 예술가분들이 자신을 자비롭게 대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조절하며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언어화하면서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게 노력하였습니다. 이러한 도움을 통해 예술가들은 안전감 있게 작품에 전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상담에서의 안전한 사회적 관계경험은 선순환을 통해 예술가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에서도 안전감을 강화하게 되고 결국 이를 통해 예술가들은 여러 스트레스를 완화하며 삶의 의미와 목적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예술가들이 제시한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대중들과 공유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상담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고 안전감을 획득할 수 있게 되고 결국 다양한 예술적 작품 창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뭔가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도 예술가들의 공간에 상담사가 방문하는 <찾아가는 상담실>과 같은 형태의 상담프로그램과 일상적 교육프로그램이 제공된다면, 상담에서 익혔던 것들을 잊지 않고 지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또다시 이번 팬데믹 같은 어려움이 예술가들을 찾아오더라도 고통스럽지만,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만나는 창조의 작업이 지속되길 희망해봅니다.

문은주(文殷珠 Moon Eun Joo)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잠시 공부한 적이 있는 상담사입니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산업조직상담을 전공하고 상담심리사2급(한국상담심리학회)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림대학교 학생생활상담센터, 경희중학교, 다인EAP 상담사, 휴노EAP 상담사를 거쳐 현재 분당서울대소방공무원심리지원단, 서울심리지원동남센터, 나무솔 심리상담센터에서 심리건강 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꿋꿋하게 오늘을 밀고 나가는 힘: 김윤식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와의 만남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꿋꿋하게 오늘을 밀고 나가는 힘김윤식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와의 만남

류수연(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김윤식

시인,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했다. 198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고래를 기다리며』 외 4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인천문인협회 인천시지회장과 인천문화재단 3기 이사, 그리고 인천문화재단 제4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신포동 패션거리 알아요? 거기서 봅시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지명이었다. 한때 인천의 명동이라 불리던 신포동이 지역의 패션 메카였다는 사실은 조금이라도 인천과 연고가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필자라고 다를까?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신포동 패션거리를 누볐던 추억 하나쯤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최근 수년 동안은 들어보지 못했던 명칭이라, 새삼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때 익숙했지만 어느덧 낯설어진,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신포동 패션거리에서 시인을 만났다.

현재의 신포동

기억 속에 추억을 다시 꺼내며
김윤식 시인은 최근의 근황을 ‘다시 읽기’라고 말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예전에 한 번 들춰보고 말았거나 묵혀두었던 책들을 다시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 읽기’를 통해 책에 깃든 자신의 옛 시간과 그 당시의 느낌과 마주하는 일이 매일의 감각을 다르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다른 일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 바로 ‘정리하기’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컴퓨터 바이러스로 인한 사고 때문이었다. 어느 날 컴퓨터가 먹통이 되면서 그 안에 저장된 대부분의 파일이 지워지는 ‘대참사’를 겪은 것이다. 250여 편의 인천 관련 글들, 책으로 묶고자 준비하던 930여 매의 원고. 백업조차 없는 글들이 마치 애초부터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로 인해 그는 한동안 깊은 정신적 공황을 겪기까지 했다고 한다. 모든 ‘글쟁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고통에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삭제된 파일 중 여기저기 메일로 전송했던 일부 원고를 찾아내면서 당시의 기억을 다시 환기하는 작업으로 변주되었다고 한다. 가까스로 찾아낸 파일들을 정리하며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의 기록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일상은 다시 읽기에서 정리하기로, 그리고 다시 읽기를 넘나들게 되어버린 것이다.

추억이 그대로 오늘이 된 곳
시인에게 인천의 의미를 묻자, 그는 어려운 질문이라고 답했다. 인천을 거의 떠나지 않았던(군대 3년, 그리고 서울에서 1년, 부천에서 1년을 살았다.) 인천 토박이인 그에게, 인천은 그저 매일의 일상을 함께하는 공기와 같은 곳이다.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나들이를 하면 발길마저 가벼운 것처럼, 인천은 그의 삶에 그대로 녹아 있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다. 그러니 이렇게 어쩌다 한번 그런 질문이 던져질 때면, 오히려 그제야 그것이 실감으로 다가온다고. 그러니 한 마디로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참으로 우문현답이었다.

그럼에도 한번 터져 나온 이야기보따리는 멈추질 않았다. 아직 인천이, 아니 동인천이, 제물포가, 아니 그보다는 신포동이, 바닷가 소도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 때부터 그의 시간은 오직 이곳에 푹 젖어 있었으니 말이다. 제물포역 앞에 쭉 늘어져 있던 배밭에서부터 인천의 곳곳에 있던 수많은 극장들. 그곳에서 보았던 영화, 그리고 때로는 빨간딱지의 외설물들까지. 인천은 그의 추억이 잠든 곳이고, 새로운 만들어지는 곳이며, 그래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필자가 제3의 시선으로 김윤식 시인에게 있어서 인천의 의미는 이쯤 되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그것은 아마도 ‘추억이 그대로 오늘이 된 곳,’ 그렇게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인천, 그리고 신포동과 함께할 테니 말이다.

덜컥 수상한 교내 백일장, 운명 같은 문예반 생활
기왕에 추억의 보따리가 열린 김에 문인의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때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저 책 읽기를 좋아하던 그가 덜컥 교내 백일장에서 수상을 한 것이다. 「파랑새」라는 당선작이 문예반 선생님의 눈에 띄면서 문예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것이 계속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잡지 학원에 몇 번인가 글이 뽑히기도 하였다. 그 덕에 전국에서 오는 여학생들의 팬레터를 받기도 했다며 소년처럼 웃음을 지었다.

시가 계기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시로 등단했지만, 산문에 대한 욕심은 꾸준히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인천과 관련된 산문을 쓰는 것은 그의 20여 년 작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특이하게도 머릿속에 인천이라는 도시의 기억이 사진처럼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단지 몇 개 건물이 어디에 있었다가 아니라, 골목과 골목을 따라 즐비한 식당들,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풍경, 거기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 기억을 사진으로 인화할 수는 없지만, 글로 써낼 수는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다만 시인은 그것을 그림이나 사진처럼 생생히 표현할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그가 최근에 출판한 『인천의 향토음식』은 그러한 기억의 결과물이다.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21)

자신만의 고유색을 가진 도시가 되길
그가 꿈꾸는 인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천문화재단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그였기에 현재의 인천에 어떤 예술적 감각을 입힐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그는 한 마디로 작은 아이디어들이 구체적으로 실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커다랗고 멋들어진 건물을 세우는 것 이상으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어지는, 사람의 삶과 일상이 살아있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의 일상이 색을 입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러면서 맹인 점자, 훈맹정음을 펴낸 송암 박두성 선생의 예를 들었다. 선생의 집을 찾아오는 맹인들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 집을 찾기가 아주 쉬웠다고 한다. 길에서 누구라도 붙잡고 “여기 태극무늬가 크게 그려진 대문 있는 집이 어디요?”라고 물으면 누구나 알려주는 집. 그 집이 바로 선생의 댁이었다고 한다. 김윤식 시인은 행복복지센터나 여러 관공서에도 이러한 특징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야 할 곳들이 타지사람이 쉽게 찾을 수 없으면 되겠냐는 그의 말이 비근한 예이지만 묵직하다.

예술가로서 선택한 길을 꿋꿋하게 짊어질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코로나 시대를 관통해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지금, 후배 문화예술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시인은 어렵게 견뎌온 모든 예술인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며, 또한 다시금 견뎌야 하는 시절임을 기억하자는 당부를 함께 건네었다. 힘든 시기였지만 결국 우리를 지탱한 것은 예술가로서의 자존감이었음을 기억하자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그것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자기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던 후배들에 대한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복합된 것이리라.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다짐을 한 마디 더한다. 예술인으로서 살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그 길이 결코 빛나고 행복한 길이 아니 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선택한 것임을, 그러므로 그 선택에 혼을 바침으로써 ‘위대한’ 예술인이 될 것임을.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천의 즐거움을 큐레이션합니다: 이종범 『스펙타클』 발행인 겸 편집장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인천의 즐거움을 큐레이션합니다이종범 『스펙타클』 발행인 겸 편집장

박현주(경인일보 사회팀 기자)

인천 청년들이 취재한 인천 이야기, 지역 잡지 『스펙타클』

“인천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알려주고 싶었던
공간과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난달 창간호를 낸 잡지 『스펙타클(Spectacle)』 발행인 겸 편집장인 이종범(29) 씨는 이같이 말했다. 표지에 적힌 말 그대로 인천에 사는 ‘인처너(Incheoner)를 위한 잡지’다. 이 씨는 편집자 주에 “인천에 깊숙이, 혹은 느슨하게 한 발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지면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인천하면 흔히 떠오르는 일관된 상상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목차를 이룬다. ‘차이나타운 어느 집 자장면이 원조인지’, ‘월미도 테마파크에서 무슨 놀이기구를 타야 재밌을지’ 이런 진부한 소재를 다루는 책자가 아니다. 인천이 꽤 익숙한 이들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졌다. 이 씨는 이번 호 주제인 ‘코로나 시대의 로컬’에 대해 “팬데믹 상황이 불러온 단절 속에서도 우리의 도시를 즐겁게 바라보는 방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스펙타클』에는 인천의 사람, 가게, 풍경,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권 없이 떠날 수 있는 인천의 세계 여행지를 소개한 내용도 그중 하나다. 중앙아시아부터 오세아니아·아메리카·유럽·동남아·동북아 등 각 대륙의 음식을 파는 곳이 상세하게 정리돼있다. 인천 곳곳에 있는 외국 음식점에서 이국적인 맛을 즐기고 여행하는 기분도 낼 수 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부평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미얀마 유학생 술라와의 인터뷰에서는 인천이란 도시가 가진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찾기 힘든 미얀마 음식점이 부평에 가면 여럿 있다는 그의 얘기처럼, 부평은 유학생, 노동자, 활동가 등 재한 미얀마인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활성화한 곳이다. 야채 곱창과 가수 ‘SS501’을 좋아하는 술라의 일상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2월 발생한 군부 쿠데타 이후 현지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끊기고, 주변 사람이 군부에 의해 끌려갔다는 짧은 인터뷰에서 미얀마가 처한 비극은 더 크게 와닿는다.

집에서 마시는 ‘홈술’이 지겨운 이들을 달랠 지역 ‘혼술 플레이스’도 빼놓을 수 없는 읽을거리다. 집에서 가볍게 마시는 캔 맥주 대신, 도수 높은 위스키가 끌릴 때 방문하기 좋은 곳들이 포함됐다. 인하대 인근의 가게 2층에는 서가에 가지런히 놓인 책 사이로,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가 놓여 있는 ‘심야 책 바(Bar)’가 있다. 입구에 “취기가 아닌 공간과 술을 즐겨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눈길을 끄는 곳. 홀로 술을 즐기는 이에게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평리단길 일대 양복점 외관을 한 가게는 와인과 막걸리, 소주 등 다양한 주종을 판매한다. 젓갈 파스타, 봉골레 떡볶이, 스위스식 감자전 등 ‘무(無)국적’ 안주가 주종을 가리지 않고 입안 가득 달곰한 맛을 돋운다.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술집은 직접 구운 쿠키와 맥주·위스키를 주로 내놓는데,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니 홀로 낮술 즐기기 딱이다. 잡지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내가 아는 인천에 이런 곳이 있나’하는 생각에 빠진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동료들과 인천을 탐방하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우리, 학교 문집 만들 듯 소소하게 할까요?
아니면 기왕 하는 거 좀 의미 있게 한번 해볼까요?”

이 씨가 잡지 『스펙타클』을 만들게 된 계기는 특별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그가 지난 3월 결성한 지역 청년 모임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1기 팀원들이 “우리 활동을 바탕으로 책 한 권 내보자.”고 제안했던 게 시작이었다. 제작비는 책이 발행되길 바랐던 시민들의 후원으로 충당했다. 인천에서 일하는 청년 10여 명은 3~4명이서 팀을 이뤄 동네를 탐방하고, 인천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기획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분야의 창작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인천 스펙타클과 강화유니버스가 함께 진행하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썸머세션의 3일차
(출처: 인천스펙타클 인스타그램)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만나서 교류하는 활동이 많이 제한됐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내가 사는 곳에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를 만든 이유입니다.”

스펙타클 유니버시티의 팀원은 학생이고, 교육자이자 연구자다. 다 같이 콘텐츠를 발굴·기획하면서 어떤 주제든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폭넓은 범위에서 활동이 이뤄진다. 어떤 날에는 공방에서 나뭇조각을 깎아 숟가락을 만들고, 또 다른 날에는 40년 가까이 운영된 LP 재즈 바에서 공연을 듣는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의 새로운 취미인 등산을 체험하기 위해 계양산을 갔다가 초입길에 있는 맛난 커피집을 들르기도 했다. 이렇게 지난 6개월 활동을 마무리한 1기 팀원들의 발자취는 『스펙타클』 창간호에 담겼다. 지난달에는 40명의 팀원이 새로 꾸려진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2기에 합류했다. 이들의 활동은 내년에 발간될 『스펙타클』 2호에 반영된다. 이 씨는 지속해서 지역 모임을 운영할 계획이다.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게 뭔지 고민했습니다. 취향에 맞는 공간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겠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스펙타클 유니버시티가 인천에서 좋은 동료를 만날 수 있는 모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종범 기획자는?

이 씨는 2017년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을 출간했다. 개항기 일본식 목조 건물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카페와 송도국제도시 마천루 사이에 자리 잡은 커피집까지 총 30곳을 방문하고 책으로 집필했다. 그는 동네 특색과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카페라고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가장 작은 단위의 문화 공간이 카페라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의 카페들』, 2017 『인천의 창작자들』, 2019
(출처: 인천스펙타클 인스타그램)

“서울로 대학교와 회사를 다니다 보니 길거리에서 허비하는 시간만 3~4시간이더라고요. 그런데 주말에도 서울에 가서 문화생활을 할 때가 많잖아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천에서도 퇴근 후와 주말의 삶을 보낼 만한 근사한 곳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역 카페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어요.”

2019년에는 인천을 무대로 활동하는 『인천의 창작자들』을 발행했다. 음악·미술·디자인·공예 등 인천에서 활동하는 청년의 삶과 활동을 담았다. 이 씨는 지난 5년간(2017~2021년) 지역 사회 문화 기획이나, 창작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예술반점 길림성, 인천 서구 크리스마스마켓, 인천크리에이티브 마켓 서멀장, 인천시 문화가 있는 인천애뜰 콘텐츠 등을 기획했다. 앞으로도 도시 인천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를 찾는 게 이 씨의 목표다.

“언제 타도 북적이는 용산행 지하철에 가까스로 몸을 구겨 넣으면, 맞은편에 텅 빈 동인천행 승강장이 눈에 들어와요. 인천이란 도시가 서울과 인근 지역을 향하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 아닌, 충분히 내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라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인터뷰 진행/글 박현주(朴賢珠, Park Hyeonju)

경인일보 사회팀 기자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 The Beginning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 The Beginning

이주경(연수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연수문화재단에서는 지난 10월 인천 연수구 옥련동에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APY: ArtPlug Yeonsu Artist residency)를 개관했다. 본래 이곳은 1992년에 세워진 ‘가천인력개발원’으로 의료 종사자 양성 기관으로 운영되었다. 의료 관계자 연수원으로 운영된 이후 약 10여 년간 비워져 있던 공간을 연수구에서 2020년 말부터 2021년 5월까지 리모델링을 진행하여 현재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아트플러그 연수가 위치한 연수구 옥련동은 송도유원지가 가장 호황이던 1980~90년대와 맞물려 한때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시기를 지나, 현재는 그 당시의 활발하고 때론 화려했었던 기억을 가진 구도심의 풍경을 안고 있다. 예전 구 송도유원지와 인접해 있던 이 공간을 많은 분들은 아직 가천인력개발원으로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아트플러그 연수는 다시 한번, 아티스트 레지던시만의 독특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예술을 통해 인천 연수구 옥련동 도심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아트플러스 연수 전경 Ⓒ연수문화재단

국내에서 예술가의 창작 작업 공간으로써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며 시작되었다. 이후 대안공간의 증가와 폐산업 시설 재생 모델 사례가 늘어나며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지자체 및 민간에서 그 수요와 공급이 증가하여 한때, 약 150여 개의 레지던시가 운영되기도 하였다.

국내 창작스튜디오의 이러한 양적 증가는 예술계 특히 시각 예술계에 건강한 환류와 예술가의 안정적 창작지원의 기반이 되었지만, 약 30여 년간의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행보와 그 이면을 돌아보면, 여전히 창작공간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엇갈린 시선들이 존재한다. 창작스튜디오의 의의를, 해당 존재 가치의 수적 환산에 의한 당위성에 대입해 보는 관점으로 단순 치환해 버리는 관점이 여전히 적지 않게 존재하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확산에 대한 방법론과 개념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대신, ‘아트플러그 연수’가 국내 레지던시 후발 주자로서 2021년 하반기 개관을 준비하며, 어떠한 지점에서의 고민을 시작으로 이번 파일럿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지면을 통해 공유하며 단편적이지만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역할과 의의에 대한 지역과 예술계의 입장과 시선을 바라보고자 한다.

기관의 성격과 미션에 따라 해당 레지던시의 역할과 목표는 상이하지만, 대체로 지자체 주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공공성에 대한 당연한 의무와 더불어 예술가의 창작지원을 기본으로 입주작가들의 직접적 참여를 통한 지역 내 문화예술의 확산이라는 조금은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운영된다. 실제 그러한 목표를 위해 표면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입주작가 지역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이 물론 긍정적 효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이는 앞에서 언급한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 중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여러 가지 사례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물론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특징 중 하나인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정주함을 목적으로 해당 레지던시가 있는 지역에 일정 기간 거주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내 예술적 순환, 교류, 확산에 대한 실효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창작스튜디오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며, 운영주체는 이를 위해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동에 대한 본질적 구조와 이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아트플러그 연수는 고민의 지점을 지역성과 순환·교류라는 관점으로부터 시작하여, 프로그램의 다양한 지점을 실험하고 방향성을 정립하기 위해 ‘창작분야’와 ‘프로젝트&리서치 분야’로 나누어 2021년 파일럿 입주작가를 선발하였다.

2021입주작가 김민석 전시전경 2021입주작가 윤미류 전시전경
<2021 ARTPLUG: The Beginning> 전시전경 (아트플러그 연수, 10.22.~11.28.) Ⓒ연수문화재단

예술창작공간의 기본 프로그램인 창작분야 입주작가 운영을 통해 예술창작공간으로서 시설의 공간적 정립과 그 역할에 대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기 위해 시범 운영 중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창작공간 본연의 역할인 예술가의 안정적 창작지원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연구하고 준비하려 한다. 이와 더불어 아트플러그 연수의 지역적 역할에 대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위해 기획자 레지던시인 프로젝트 분야를 선발하였다. 창작공간의 지역연계 과제와 레지던시 네트워크 및 자발적 순환에 대한 목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풀어가기 위해 올해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 중이다.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두 가지 측면으로 운영되는데, 자율 주제 프로젝트 지원과 연수구와 연관된 리서치 프로젝트 지원이 있다. 국내에는 기획자의 아트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아트 프로젝트는 동시대의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며 때론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낸다. 아트플러그 연수는 프로젝트 입주분야의 운영을 통해 다양한 기획을 실현할 수 있는 장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유연함과 실험성을 확대하고자 한다. 또한 연수구 문화자산에 대한 ‘현대화’를 통해 인천 연수구의 지역성 및 공동체성의 예술적 해석과 더불어 지역 문화자산의 지속 가능한 기반을 구축하고자 한다.

아트플러그 연수 2021입주작가 아카이브 ‘랜-딩 페이지’ 프로젝트 프리 리서치
<2021 ARTPLUG: The Beginning> 전시전경 (아트플러그 연수, 10.22.~11.28.) Ⓒ연수문화재단

현재 아트플러그 연수에서는 개관전을 겸하여 2021년 파일럿 입주작가 프리뷰전 <2021 ARTPLUG: The Beginning>(10.22.~11.28.)을 개최하였다. 이번 전시는 2021 입주작가 프리뷰전으로 창작 6팀의 작업과 프로젝트 2팀의 프리 리서치를 보여준다. 전시 제목 ‘The Beginnig’은 예술창작공간으로 새롭게 변모한 아트플러그 연수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을 제시하고 실천하기 위한 시작임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 참여 작가는 8팀으로 창작분야 김민, 김민석, 윤미류, 이현우, 전장연, 정기훈 작가의 작품과 프로젝트분야 랜-딩 페이지(이현인, 조근하, 오타하루카, 타케마사토모코), 이정은 작가의 프로젝트 프리 리서치를 살펴볼 수 있다. 이번 2021년 프리뷰 전을 기점으로 아트플러그 연수에서는 여러 논의와 제의, 동조와 이견, 실행과 교차가 날것 그대로 오고 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풍경을 대면하는 예술창작공간으로 시대적 관계의 틀을 새롭게 조직하고자 한다. 올 한 해 지역사회와 예술계에 유의미한 지점으로 작동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이주경(李周暻, LEE Ju Kyeong)

이주경은 예술경영 석사 졸업 후 축제조직에서 공연기획과 폐산업시설 문화 재생공간 개관 프로그래머와 다년간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기획 업무를 경험했다. 현재는 인천 연수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차장으로 근무 중이며, 연수문화재단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 개관 및 레지던시 프로그램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달려라, 아비〉는 사실 우리 엄마 이야기예요

<달려라, 아비>는 사실 우리 엄마 이야기예요

정영진(인천문화예술회관 주무관)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루네오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리고 스핑크스 왼쪽 발등을 돌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백십 번째 화장실에 들러, 이베리아반도의 과다라마산맥을 넘어 달려간다고 생각했어.” 딸의 상상 속에서 아빠는 지구 어딘가를 핫핑크 반바지를 입고 달린다. 엄마와 함께 일상을 맞는 딸은 쾌활한 성격이다. 모녀에게는 아빠의 부재로 인한 상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씩 과거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엄마와 아빠의 사랑과 헤어짐 속에 담긴 사연들을 찾게 된다.

<달려라, 아비>는 어떻게 제작되었을까?
연극 <달려라, 아비>는 김애란 작가의 원작 소설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2021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에서 주관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공동제작‧배급 사업 공모에 당선돼 제작했다. 인천 내 3개 문화예술기관(인천문화예술회관, 부평구문화재단, 인천서구문화재단)과 ㈜스포트라이트가 공동으로 제작했고 총제작비의 50%는 국비 지원, 나머지 50%는 3개 기관이 각각 부담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작품 창작 전 과정을 세세하게 관리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문화예술회관
부평아트센터
ⓒ부평구문화재단
청라블루노바홀
ⓒ인천서구문화재단

작품 제작은 딱 일 년 전에 시작됐다. 한문연 사업 공모가 난 직후 인천지역 3개 문화예술회관 공연기획 담당자들이 첫 만남을 가졌다.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두렵기도 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공동으로 작품을 만들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생각들을 모아갔다. 그러던 차에 우연인 듯 필연처럼 다가온 작품 제안이 <달려라, 아비>였다. 대본을 들고 찾아온 제작 프로듀서의 수줍어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인천 출신 인기 소설가 김애란의 작품을 인천에 있는 문화예술 기관과 공동으로 제작해서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소설을 각색해 송현동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인천의 이야기를 만들고 서울과 전국으로 유통해서 스테디셀러 연극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프로듀서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품 제작이 1년의 숙성 시간을 거쳐 드디어 10월 22일 청라블루노바홀에서 첫 공연을 올리고, 11월 13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마지막 공연까지 총 9번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주)스포트라이트

<달려라, 아비>는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술빵, 팔길래, 눈 와, 첫눈” 끊어진 단어 사이로 아빠의 서툰 사랑고백이 참 사랑스럽다. 엄마와 아빠의 로맨스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애틋하고 예쁘게 자란다. 하지만 딸이 태어나기 직전 집을 나간 아빠. 딸에게 아빠는 미지의 세계고 어디선가 열심히 뛰고 있는 대상이다. 아빠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엄마와 딸. 그들은 그저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아련한 빈자리는 추억과 상상으로 메꾸며 잘 살아가고 있다.
제목은 아빠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들지만 사실 이 연극은 엄마의 이야기다. 아빠에 대한 상상 속 달리기는 택시 운전을 하는 엄마를 상징하는 이야기로 전환된다. 핫핑크 반바지를 입고 세계 곳곳을 달리는 아빠는 택시를 몰아 시내를 질주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오늘도 바쁜 일상에서 명랑함을 잃지 않은 딸의 모습으로 하루하루 잘 살아내는 우리들 모습으로 그려진다.
<달려라, 아비>의 단순한 플롯 전개를 재기발랄한 극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은 영상이 맡았다. 이 극의 장르는 영상이 결합된 콘템포러리 연극이다. 반지하방이 다양한 공간으로 변신하고 앞쪽으로 놓인 러닝 트랙과 허들은 동화적 이미지와 함께 메시지 전달을 위한 오브제로 쓰인다.
작품을 섬세하게 다듬은 김가람 연출가는 <뮤지컬 아랑가>로 명성을 쌓은 젊은 연출가이다. 그녀가 그려내는 무대는 역동적이면서도 파스텔톤의 아련한 감정이 녹아있다. 과감한 영상 도입과 무대 장치의 조합은 볼거리 제공과 함께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연극에 생동감을 불어 넣은 배우들은 누굴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지만, 딸과 함께 남겨진 삶을 긍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엄마 역할은 정영주가 맡았다. 그는 최근 뮤지컬과 방송으로 바쁜 스케줄 임에도 연극무대의 생동감을 잃고 싶지 않아 캐스팅에 응했다고 한다. 기존의 억척스러운 이미지를 절제하고 극중 배우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연기를 택했다. 딸 역할의 이휴는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신예다. 원작처럼 전체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이끌어 가면서 극중 감정의 고저를 주도한다. 아빠 역할의 장두환은 1인 다역 멀티맨이다. 아빠와 외할아버지, 택시 승객 등 다양한 남성 캐릭터를 극 속에 녹여내며 감초 역할을 한다.

ⓒ인천문화예술회관

<달려라, 아비>는 내년 대학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의 3개 문화예술기관과 제작사는 앞으로 계속 공연을 할 때마다 공동제작 명의를 쓰기로 했다. <달려라, 아비>의 출발점은 인천이다. 내년 대학로를 시작으로 대전을 지나 광주 무등산을 너머 부산 김해 공항을 돌아 제주 한라산으로, 그러다 태평양을 날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달리는 아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영진(丁榮進, Chung Young Jin)

안양아트센터, 마포아트센터, 부평아트센터, 종로아이들극장, 인천문화예술회관 등 공공공연장에서 공연기획과 홍보마케팅 업무를 주로 담당해왔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문화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인하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에서 문화예술교육개론을 강의하고 있다.




어느 공연 담당자의 단상

어느 공연 담당자의 단상

성채은(부평구문화재단)

내 탓이오, 내 일이오
어떠한 문제나 갈등의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내 탓이오’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답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지구온난화도, 바다거북의 멸종 위기도 다 내 탓인 것만 같다. 일도 그렇다. 내 일 네 일 가리지 말고 다 ‘내 일이오’ 하다 보면 잘되겠지. 그리고 그것이 답이겠지 생각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지방공연을 내려가 식당 반찬을 알아보는 것도 내 일이고, 카페가 문을 열지 않은 시간 눈이 덜 뜨인 출연자에게 커피를 만들어 주는 것도 내 일이다. ‘공연 담당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공연과 관련한 A부터 Z까지 그 어떤 것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나름 분야별로 업무가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업무 칸막이들 사이에서 어디에 넣어야 할지 애매한 일들은 모두 ‘담당자’에게 귀결된다. 업무 진행 구조가 불합리해서가 아니라, 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공연이 끝난 밤, 회사에 남아 배우들의 옷을 빨다가, 대기실에 남겨진 도시락의 잔반을 치우다가, 가끔 이것이 무슨 상황인가 혼자 머릿속으로 알고리즘을 돌려볼 때가 있다.
지금 이 일이 내가 생각한 업무의 범위 안에 있는 일인가 → 아니다 → 그렇다면 이 일은 다른 누군가의 업무에 속한 일인가 → 아니다 → 누구의 업무에도 명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인가 → 그렇다 → 그럼 나구나… 다음주에는 관객 제공용 선물 450개를 포장해야 한다.

Office Worker
나는 사무직이다. 언젠가 무려 외국으로 여행을 편히 갈 수 있었던 시절, 입국신고서를 작성할 때 직업을 묻는 란에도 그렇게 적었다. ‘Office Worker’ 비록 온종일 사무실 책상에 한 번을 못 앉는 날도, 무대에 올릴 소품을 찾느라 발품을 팔고, 홍보물을 옆구리에 끼고 근처 카페와 공연장들을 돌아다니는 날들이 수두룩하지만 내 직업의 기본 설정값을 정의한다면 ‘사무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도 아니고 특수기술을 가진 전문직도 아닌, 공연 관련 일을 하는 사무직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가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돕고, 행정적인 뒷받침을 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정도는 그들의 예술적 언어를 이해해야 하며 “소리가 너무 드라이하지 않나요?”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질문에 “객석에서 들을 때는 잔향이 나쁘지 않습니다.” 같은 대답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기술적이고 실제적인 대답은 음향감독님이 해주시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 “어…”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공연장을 보유한 재단의 예술기획팀에서 일하게 되다 보니 알아야 하고 해야 하는 것은 더욱 많아졌다. 오랜 시간 클래식 관련 공연만 해봤었던 나는 지금의 재단에서 일하게 된 후 너무나 많은 무대 용어, 공연 용어들을 눈치껏 배우고 습득해야 했다. 지난해, 자체 제작 뮤지컬을 맡으면서는 배우 오디션부터 테크 리허설, 드레스 리허설 등 많은 인원이 촘촘하게 운영되는 과정을 0에서부터 처음 겪고 배웠다.

<2021 서현진과 함께하는 브런치 콘서트: 춤출까요?> 10월 “광기, 무섭도록 아름다운” ⓒ부평구문화재단

올해 새롭게 담당하게 된 ‘브런치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을 기본으로 하는 구성이라 조금은 익숙하게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과 무용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공연으로 기획하여 음악감독과 무용감독을 섭외하고 대본작가도 구했다. 공연의 회차별 주제도 정하고 사회자와 출연진도 섭외하고 홍보물도 만들었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싶었는데 아뿔싸, 텅 빈 무대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사회자는 무대에 계속 앉아있을 거야? 무용 공간은 어디까지로 잡을 거야? 첫 번째 주제가 바로크라며, 그럼 바로크 느낌을 무대에 어떻게 표현할 거야?” 무대 연출자가 따로 있다면 단박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에겐 늘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로크 이미지의 작화막을 달아야 하나? 그러기엔 딱 떨어지는 이미지적 정의가 있는 건 아니잖아. 10월 공연 주제 ‘광기’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지? 무용을 위한 무대 공간은 어느 정도로 확보를 해야 할까? 연주자들 공간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잘 안 보이겠지?’ 일을 하면서 숱하게 찾아오는 이런 막막함이 무한히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때에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나의 취미생활을 해본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오해 마시라.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찰스 부코스키, 민음사)는 책 제목이다. ‘책 사기’는 나의 오랜 취미생활이다. 주로 명민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나의 두뇌 때문에 괴로워서 스트레스가 쌓이는 때에 행해진다. (끝까지 다 읽는 것은 나중의 문제이다.) 책을 사는 것으로라도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같은 말을 뱉어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내가 아직 어리숙한 담당자, 기획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늘 어렵다. 일의 범위는 너무 넓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너무 조금이고, 나는 늘 서투르다. 예술가가 본인의 예술을 펼쳐낼 때는 한발 뒤로 물러나서 그의 세계를 존중해 주어야 하고, 그 세계가 관객석과 너무 멀어질 때는 그 세계의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그 간극을 좁혀줄 제안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가용한 예산의 범위 내에서 최대의 효율을 취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운영을 구상하고 실행해내야 하며, 그 실행은 무대에 오르는 예술가와 관람하는 관객, 그리고 이 기관까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무직’이지만 그 ‘사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고 생각해야 할 것은 사무실 안에도, 밖에도 산적해 있다.

2020 부평구문화재단 제작공연 창작뮤지컬 <헛스윙밴드> ⓒ부평구문화재단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이것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까지 하다 보면, 내 손이 닿은 영역이 많아질수록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다는 것을. 지방공연을 내려가 로드뷰를 훑어가며 찾아낸 국밥집이 맛이 좋으면 그 또한 내가 뿌듯한 일이고, 내가 포장한 증정품을 들고 돌아가는 관객의 즐거운 뒷모습도 감사한 일이 된다. 고민에 고민을 더해서 기획한 공연의 객석이 채워져 나가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있을까. 사실 툴툴거리는 볼멘소리들은 내 몸을 일으켜 뭐라도 하나 더 하게 하는 노동요 같은 화력이다.
눈앞에 세 개의 공연이 연달아 줄지어 있다. 분명 수많은 상황에서 고민에 빠지고 뛰어다녀야겠지만 고민의 시간과 뛰어다닌 걸음만큼 보람과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일이고 나의 업무이다.

성채은(成采垠, Chae-eun Sung)

부평구문화재단 예술기획팀 대리. 교향악단, 클래식 공연 기획사에서 근무하다 부평구문화재단에 입사하여 마케팅팀, 기획조정팀을 거쳐 예술기획팀(당시 공연사업팀)에 근무중이다. 2020년은 코로나로 공연 계획과 취소를 반복했지만, 부평구문화재단 자체 제작공연 <헛스윙밴드>를 맡아 무사히 전 회차 공연을 마쳤다. 2021년 <헛스윙밴드>의 지방공연과 <함께하는 브런치 콘서트: 춤출까요?>를 비롯한 공연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제4회 임진예성포럼, 남북역사문화교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다

제4회 임진예성포럼,
남북역사문화교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다

정민섭(인천문화재단 평화문화예술교류사업단)

임진예성포럼은 안정적, 지속적 남북역사문화교류사업 모델을 만들기 위해 인천문화재단과 경기문화재단, 중국 연변대학교 조선반도연구원 등 3개 기관이 창립한 정기 국제 학술 포럼이다. 포럼의 주제는 인천·경기지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북한 황해남·북도 및 개성, 남포지역의 유무형 문화자산 등에 대한 학술적 비교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2018년 포럼 주제는 ‘고려의 대외교류와 세계유산 개성역사유적지구 유적 비교’였으며, 2019년은 ‘남북한 중세 왕릉의 세계유산 교차 확장 등재 가능성 검토’가 주제로 다루어졌다. 한편, 2020년에는 연변대 연구진의 북한현지조사를 중심으로 한 <황해남도 역사문화 조사연구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에 3회 포럼은 ‘황해남도 문화유산 조사연구를 위한 예비적 검토’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다만,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인해 연변대학교 관계자의 포럼 대면 참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사전 녹화 영상으로 참여를 대체하기도 했다.

이상의 세 차례 개최된 임진예성포럼의 성과를 토대로 2021년 제4회 포럼은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황해남·북도 유·무형 문화자산의 현황’을 주제로 개최했다. 특히 무형유산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기획하게 되었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황해남·북도 역사문화 조사연구 사업>에서 유형유산 뿐만 아니라 무형유산에 대한 검토도 함께 이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북의 역사문화교류는 대부분 유형유산을 매개로 진행되었다. 이는 유형유산이 명확히 남북 한 간의 연계와 동질성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진행된 임진예성포럼은 유형유산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2021년 인천, 경기문화재단과 연변대는 이러한 편중을 극복하고 황해남·북도 역사문화 조사연구 사업과 학술포럼 간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 무형유산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게 되었다.

<제4회 임진예성포럼> 현장 모습

둘째는 북한 내부의 무형유산에 대한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은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관리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민족제일주의와 관련한 체제 우월성 선전, 주민 교양, 대외적으로 유네스코 무형유산을 통한 국제적 동참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되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비물질문화유산 중 황해도 지역의 비물질문화유산은 인천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 시기 인천으로 이주한 황해도지역 피난민에 의해 황해도 일대 무형유산이 전승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제4회 임진예성포럼에서 북한의 황해남·북도지역의 비물질문화유산과 인천의 무형유산과의 교류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했다.

이에 제4회 임진예성포럼은 「1900년 전후 황해도 해주백자의 제작배경과 양식」, 「황해도 굿의 특징과 전승현황」, 「교류와 매개로서 문화유산-황해도 지역의 비물질문화유산과 인천·경기지역 간 교류와 협력」,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 부각과 의미」 등 총 4개의 주제발표 및 토론을 진행했다.

「1900년 전후 황해도 해주백자의 제작배경과 양식」에서는 20세기 들어선 시기 국가가 생산하던 도자기 생산시설인 분원이 폐지와 민영화를 겪은 과정을 살폈다. 그리고 해주백자가 어떻게 등장했는지, 옹기와 백자 결합한 화려한 해주백자의 모습은 당시 어떤 시대상황을 반영하는지에 대해 확인했다. 「황해도 굿의 특징과 전승현황」에서는 분단 이전 시기 황해도 굿의 특징과 분포 현황 및 분단 이후 황해도 굿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교류와 매개로서 문화유산-황해도 지역의 비물질문화유산과 인천·경기지역 간 교류와 협력」에서는 2010년대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 정책의 변화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범위가 확장되는 황해도 일대 비물질문화유산의 현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황해도 일대 비물질문화유산과 인천과의 연계 검토를 통해 비정치적인 무형유산을 활용한 교류 가능성도 함께 검토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 부각과 의미」 에서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비물질문화유산 관리 현황과 그 특징 그리고 비물질문화유산이 강조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종합토론을 통해 개별 주제발표와 관련하여 황해남·북도의 유·무형문화자산의 연구과제와 더불어 남북교류의 매개로서 무형유산의 가능성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2021년 임진예성포럼은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많은 시민과 연구자들이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포럼에서 논의된 주제발표와 토론의 성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우선, 지금까지 각론적으로 논의되었던 인천과 황해남·북도가 공유하고 있는 무형유산의 현황과 조사연구 성과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북한의 현재 비물질문화유산 정책 방향을 확인함으로써 앞으로 인천과 북한과의 무형유산 교류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는 다양한 인천형 남북역사문화교류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평화문화예술교류사업단은 앞으로 제4회 임진예성포럼에서 도출된 다양한 무형유산들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를 통해 남북역사문화교류사업의 폭을 확대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정민섭(鄭珉燮, Min-sup Jung)

인천문화재단 평화문화예술교류사업단 대리. 역사고고학[성곽] 전공. 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을 거쳐 현재 평화문화예술교류사업단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인천의 다양한 평화자산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평화자산에 대한 문화예술적 해석과 활용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